언론속의 국민
[조선일보-시론] 북(北) 화폐개혁은 '시장(市場) 뭉개기'다/안드레이 란코프(교양과정부)교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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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30일 아침에 북한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1992년부터 하지 못한 화폐개혁을 단행했기 때문이다. 그쪽 역사를 보면 화폐개혁은 예외적인 것이 아니다. 또 자주 생기는 일도 아니다. 이번에 평양 당국자들이 조치를 취한 이유는 무얼까? 대부분 전문가들은 북한 화폐개혁이 주민들이 보유한 현금을 감소시킴으로써 인플레이션을 막기 위한 조치라고 분석한다. 물론 북한 정권은 이러한 목적이 없지 않다. 그러나 객관적으로 말하면 북한 인플레이션은 화폐개혁을 실시할 정도로 심하지 않다. 북한은 2002년 7·1 조치 직후 엄청난 인플레이션을 경험했지만 최근에 많이 정상화되었다. 따라서 화폐개혁은 인플레이션 통제보다 다른 목적을 지향하는 정책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화폐개혁은 지난 15년 동안 관리주의 국가의 경제적 지배 체제에 도전하는 시장세력을 약화하는 조치로 보면 더 정확하다. 스탈린식 경제 체제를 유지하려는 당국자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북한 사회 내에서 자발적으로 자라나는 시장세력은 북한 엘리트들에게 불구대천 원수다. 북한 간부들이 제일 무섭게 생각하는 '적(敵)'은 시장을 통해서 생계를 꾸릴 수 있는 사람들이다. 북한 통치배들에게는 집에서 두부를 만들거나 편리한 옷을 재봉하는 아줌마들이 '미국제국주의'나 '남조선 괴뢰'보다 더 무서운 것이다. 시장세력이 북한 간부들의 권력과 특권을 위협하기 때문에 그렇다. 장마당은 북한 사람들의 의식을 보이지 않게 바꾸는 장소이다. 자발적인 시장화 때문에 북한 주민들은 간부가 주는 배급 없이도 자기 힘으로 살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고 국가에 대한 의존도도 낮아지고 있다. 또 장마당은 정보가 자유롭게 돌고 있는 공간이 됐다. 이곳을 통해서 북한 주민들은 금지된 소식, 알지 말아야 하는 사실을 배우고 있다. 지배층의 쇄국정책도 흔들리고 있다. 중국 공산당 간부들은 같은 도전에 직면했을 때 시장화에 대한 통제를 포기했다. 그러나 남북 간의 경제 격차가 너무 크다는, 분단국가의 조건하에서 중국식 개방과 개혁은 동독 같은 체제붕괴 및 흡수통일을 초래할 가능성이 높다. 시장을 자신들의 뜻대로 통제할 수 없는 북한 지배계층은 시장세력을 탄압할 수밖에 없다. 그 결과로 단행된 화폐개혁은 적지 않은 개인·중소 사업에 치명적인 타격을 줄 것이다. 북한 특권계층이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사회는 주민들이 간부가 시키는 대로 일하고 간부가 결정한 배급으로 먹고사는 사회이다. 그래야만 자신들의 권력과 특권을 그대로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2005년 배급제 재개 이후 북한 국내 통치의 기본 골격을 한마디로 말하면 '반(反)개혁'이다. 지난 4~5년 동안 북한 정권은 자발적 시장화를 제한하거나 탄압하고 김일성 시대의 스탈린 체제를 부활시키려 노력하고 있다. 화폐개혁은 이 방향으로 나아가는 조치 가운데 하나다. 북한 정권이 택한 100 대 1 교환비율도 정치적인 상징성이 있다. 이번 화폐개혁 결과로 물가 및 임금은 1980년대, 즉 김일성 시대와 비슷해질 것이다. 지금 북한의 평균 월급은 신권으로 50원인데 쌀 1kg은 암시장에서 25원으로 구입할 수 있다. 북한 체제가 흔들리기 시작하기 직전인 1980년대 말에 평균 월급은 60~70원 정도였고 당시 암시장에서 쌀 1kg은 15~20원 정도였다. 바꿔 말하면 북한 지배계층은 '자신들의 천국'이라고 생각하는 1980년대 북한 생활로 돌아가자는 생각을 드러내는 것 같다. 화폐개혁으로 북한은 뒤로 또 한 걸음 물러났다. 2005년 이후 동향으로 볼 때 결코 놀라운 일이 아니다. 원문보기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9/12/07/2009120701490.htm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