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속의 국민
[시론] '김정일 이후' / 안드레이 란코프 (교양과정부) 교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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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제 안정 기대 힘들어 지배층 내부 투쟁 시작 김정일 건강 이상과 북한의 장래에 관한 보도가 이어지고 있다. 80년대에도 90년대에도 비슷한 소문이 퍼진 것을 본 경험으로 볼 때 이번 보도를 어느 정도 믿을 수 있는지 의심스럽다. 그러나 이 위기는 우리로 하여금 한반도 미래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도록 한다. 66세인 김정일의 건강이 좋지 않은 것은 사실이고 그의 사망은 그리 멀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탈김(脫金) 시대 북한의 지도부 구성, 북한이 취할 정책에 대해서 여러 가지 가설을 세운다. 그러나 탈김 체제는 김정일의 사망 직후 바로 도전에 직면할 것이다. 탈김 지도부가 어떻게 구성되고, 어떤 정책을 취하든 제일 먼저 맞닥뜨려야 할 것은 국내 안정을 유지하는 일이다. 그러나 북한의 현황을 고려해 보면 안정 유지는 결코 쉬운 과제가 아니다. 고도 경제성장을 자랑하는 동아시아에서 북한은 유난히 장기적인 침체에다 식량난마저 겪고 있다. 북한의 1인당 소득은 제일 낙관적인 추정을 믿는다 해도 중국의 3~4분의 1, 같은 민족 국가인 남한의 15~20분의 1에 불과하다. 현대 세계에서 이만큼 심각한 경제 격차는 정권의 정당성을 위협하는 것이다. 그래서 북한의 소수 집권계층은 국민들에 대한 엄격한 통제를 체제 유지의 기본 조건으로 보고 국민들이 정권에 항쟁할 능력도, 의지도 없도록 하려 갖은 수를 다 쓰고 있다. 세계의 역사가 보여주듯 혁명이나 반란은 서민의 생활 조건이나 정치 폭정이 제일 열악할 때 일어나는 게 아니다. 뒤처진 개혁 시도나 정권 안의 내분과 다툼이 불안정과 반란을 초래할 요소들이다. 북한 지도부는 이 사실을 잘 안다. 세상에 권력 싫어하는 집권계층이 있겠는가만 북한 엘리트 계층은 권력 유지를 각별히 중요하게 생각한다. 역사를 보면 어떤 나라에서 정권 교체가 발생해도 새로운 정치 엘리트는 주로 옛날 엘리트 출신으로 구성되었다. 1790년대 프랑스의 공포정치와 토지개혁에도 불구하고 19세기 프랑스 공화국을 다스린 사람 대부분은 17~18세기의 귀족 후손들이었다. 현재 러시아의 사업가들은 압도적으로 공산당 간부나 그 자녀들이다. 북한의 경우 체제 붕괴가 남한에 의한 흡수통일을 초래할 가능성이 높아서 북한 지배계층은 통일 후엔 자기들의 미래가 없다는 걸 잘 안다. 또, 그들은 김부자(金父子) 정권이 자행한 범죄와 인권침해 때문에 벌을 받고 감옥에 갈지도 모른다는 공포도 심하다. 그래서 북한 엘리트는 집단적인 이익을 위해 단결 유지를 필요로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언제까지 이런 단결을 유지할 수 있느냐에 대해선 의문이 있다. 문제는 김정일 사망 후 그들의 집단이익이 그들의 개인이익과 모순되는 경우이다. 민주주의 체제든 독재체제든 최고 지도부이면 야심이 많지 않은 사람이 있을 수 없다. 독재자의 갑작스러운 사망은 야심 많은 정치인이 꿈을 실현할 수 있는 기회이다. 지금 인민군 원수들과 당중앙 비서들은 김정일이나 그의 정책에 대해서 불만을 품을 수도 있지만 '위대한 령도자'를 체제 유지의 보장으로 본다. 그러나 김정일이 갑자기 없어지면 적지 않은 고급간부들은 그를 대체할 인물을 새로운 지도자로 인정하려 하기보다 이 기회에 자기가 정권을 장악하려는 야심을 가질 것이다. 또는, 북한 지도부 내에 보이지 않는 갈등과 종파가 있다고 짐작할 수 있다. 탈김 체제에서 권력을 장악할 것 같은 인물들과 적대 관계에 있는 자들은 숙청에 대한 공포 때문에 서로 정권 장악을 위한 싸움을 할 수도 있다. 그들은 이러한 충돌이 체제를 파괴할 수 있다는 것을 알 것이다. 그러나 적들이 지도부를 지배하면 어차피 자기들은 숙청과 죽음으로 몰릴 수밖에 없으니 권력투쟁은 그들에게 차악(次惡)이다. 그 결과 체제 내 불안정과 혼란은 필연이다. 결국 어느 쪽이 더 셀까? 집단 이기주의인가 아니면 개인 이기주의인가? 우리는 그 결과를 곧 알게 될지 모른다. 확실한 것은 북한의 장래에 난관이 보인다는 것이다. 원문보기 :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10&oid=023&aid=000199014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