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속의 국민
[에세이―김대환] 어울림 / (음악학부) 교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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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알반 베르크 현악 4중주단이 20년 만에 내한공연을 가졌다. 그들의 명반을 들으며 언젠가 실연(實演) 보기를 고대한 나였지만 그즈음 학기말로 치달으면서 많이 지쳐있었다. 그뿐 아니라 공연 장소인 경기도 고양시 덕양 어울림극장은 가본 적이 없어서인지 무척 멀게만 느껴졌다. 가야 할지 말아야 할지 한참을 망설이다 길을 나섰는데 지금 돌이켜보면 얼마나 다행인지…. 그들의 연주는 한 마디로 완벽한 조화 그 자체였다. 4명의 각기 다른 개성을 가진 사람들이 만나 음악으로 하나가 될 수 있다는 것이 그저 놀라웠다고나 할까. 지금은 고인이 된 비올라 주자가 병환으로 그 제자로 교체되었음에도 알반 베르크 현악 4중주단은 좋은 앙상블이 무엇인가를 보여주었다. 이미 그들의 음반을 들어 익숙해져 있던 슈베르트의 ‘죽음과 소녀’에서도 평생 간직할 강한 전율이 느껴졌으니 말이다. 독주회와는 또 다른 느낌, 호흡을 맞춰 같이 이루어낸 연주에서의 감동은 더욱 특별하게 느껴졌다. 그날의 연주를 들어본 사람은 그들의 연주가 극장 이름처럼 완전한 어울림이었다는 데 동의할 수 있을 것이다. 흔히 우리나라 학생들은 독주에는 강하나 앙상블(실내악)에 약하다고 한다. 사실, 콩쿠르와 실기시험, 입시에 쫓기듯 공부하는 우리나라 현실에서 여러 명이 만나 많은 시간을 함께하며 실내악을 한다는 것은 어쩐지 사치처럼 느껴진다. 또한 자기 연주를 돋보이는 것만 위주로 연습해온 그들에게 남을 위해 자신을 낮출 수 있어야 하는 실내악은 어색할 수도 있다. 그러한 점은 음악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실내악에서 각자의 음정, 음색, 음량 그리고 음악을 조율하듯 사회에서는 자신의 생각과 의견을 남과 조율해야 한다. 그러나 사회에서나 음악에서나 말할 때와 들을 때를 알고 조화를 이룬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닌 듯하다. 요즈음 우리 사회에서는 귀를 열기보다 자신의 의견만 내세워 앙상블을 망치는 사람이 많은 것 같아 왠지 마음 한편이 씁쓸해지곤 한다. 좋은 앙상블이란 서로에 대한 배려와 적절한 균형 속에서 자신을 표현하는 것이 아닐까? 완전한 어울림! 언젠가 우리 사회에서도 그런 멋진 앙상블을 들을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원문보기 : http://www.kukinews.com/special/article/opinion_view.asp?page=1&gCode=opi&arcid=0920595836&cp=nv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