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대학교

언론속의 국민

[한경에세이] 하나님의 실수 / 남유선 (법) 교수

홍콩에서 근무하고 있는 동생가족이 지난주 서울에 왔다. 초등학생 조카는 예전 학교 친구들을 만날 기대에 잔뜩 부풀어 있다가 실망한 표정으로 내게 말했다. "고모,만날 친구들이 없어요. " 알고 보니 조기 영어유학 열풍으로 아는 친구들이 모두 해외로 떠난 것이다. 몇 명이나 기러기 아빠 신세가 되었을까라는 생각이 들며 한숨이 절로 나왔다.

얼마전 외국어 교육과 관련,한 퇴직 교장선생님의 말씀이 화제가 된 일이 있다. "하나님의 첫 실수는 인간이 바벨탑을 쌓지 못하게 한 것"이란 화두였다. 성경 창세기 11장의 바벨탑을 기초로 한 가설이다. 애초에 인간이 바벨탑을 쌓으려한 것은 탑 정상을 하늘에 닿게 해 누구나 같은 언어로 하나님과 대화하고 동격이 되려는 의도였다. 그러나 하나님은 인류의 언어단일화로 인한 완벽한 의사소통이 통제력에 방해가 될 수 있다고 판단한 듯했다. 그런 우려에서 지구상의 언어가 동일해질 수 있는 가능성은 사라졌다. 그래서 바벨탑 무산은 우리의 외국어 교육현실을 직시할 때 '하나님의 실수'란 농담 섞인 결론이었다.

영어가 지구촌에서 가장 널리 쓰이는 건 사실이다. 특히 비즈니스 세계에선 공용어가 되다시피 했다. 이런 영어에 대해 에피소드 하나쯤 없는 사람이 있을까. 필자도 미국 유학시절 영어에 얽힌 허탈한 기억이 있다. 유학 준비로 정신 없이 바쁠 때 한 문제라도 더 맞추기 위해 시간을 쪼개 영어학원을 다녔다. 그런데 막상 미국에 유학가서 대학입학사정위원을 만나봤더니 "미국 명문대학의 토플성적 반영은 일정 점수기준 합격.불합격 여부만을 결정할 뿐"이란다. 물론 영어 공부를 열심히 해두면 유학생활에 보탬이 되겠지만,허탈한 느낌이 강하게 밀려왔다.

언어는 학문으로 전공하지 않는 한 기술이요,방법이다. 이를 위해 가정생활을 희생당하고 상당한 기회비용을 치르는 것이 타당할까. 그 결과로 답 맞추는 로봇은 양산해도 진정한 영어교육,나아가 각 분야별 교육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바벨탑의 하나님도 작금의 교육현실을 유쾌해하지 않으리라.반면에 우리는 인류가 동일한 언어를 사용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며,만약 단일언어라고 해도 의사결정 등이 항상 쉬울 수 없음을 잘 안다. 그렇다면 적어도 영어교육에 대해서는 그 무게를 줄여 '합격.불합격만을 평가하도록 하는 제도' 도입도 고려해볼 만하다. 이는 일선 교육실무자 및 정책당국에 난제 중의 난제일 것이다. 하지만 지금이야말로 전 국민의 과감한 발상전환이 필요한 때다.

원문보기 :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10&oid=015&aid=0001987824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