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속의 국민
[시론/윤호섭]석유문명의 숨통 틔우는 자전거 / (시디) 명예교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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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유럽 몰락 후 석유로 움직이던 쿠바의 모든 교통수단이 하루아침에 멈춰 선 적이 있다. 당시 카스트로 정부는 궁여지책으로 중국에서 자전거 50만 대를 긴급 수입해 도시의 기능을 조금이라도 움직여 보려 애를 썼다. 원유 1배럴에 100달러를 오르내리는 고유가 시대에 사는 우리에게도 그런 어려움이 닥치지 말란 법은 없다. 시설 못잖게 의식 인프라도 중요 최근 자전거 타는 사람이 늘고 있다. 레저, 스포츠 차원을 넘어서는 실용의 목적에서다. 자발적으로 고유가 시대를 극복하려는 건전한 시민, 환경주의자도 있다. 학교 가는 학생, 시장 보는 주부가 자전거 타는 모습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정부나 지방자치단체도 자전거도로, 주차시설 등 자전거 관련 사업을 의욕적으로 펼치고 있다. 요즘 세상 돌아가는 상황을 보면 지금쯤 자전거에 대한 구체적인 정책을 세우고 시행해야 한다. 자전거 전용도로, 연계 시스템, 주차장, 자전거 신호, 도로 그래픽, 사인, 그린맵 차원의 자전거지도 등 종합적인 방안을 마련해 자전거 타는 사람들을 편하게 해줘야 한다. 자전거 교통 인프라스트럭처도 중요하지만 먼저 생각할 점은 눈에 보이지 않는 의식 인프라다. 국가나 개인의 관점에서 보는 자전거 타기는 석유 공급이 원활하지 않을 때를 대비하는 안보, 경제 차원의 현실적 위기대응이 될 수 있지만 사실 자전거 타기는 그 이상의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석유문명의 굴레에서 벗어나 진정 자유로운 이동의 기쁨을 맛보는 정신적 육체적 자유의 회복 말이다. 길이 뚫리기를 짜증스레 기다리는 운전자를 생각해보라. 말라카 해협을 거쳐 실려 온 석유 위에 앉아 수만 년 묻혀 있던 화석을 태우며 배기가스를 내뿜는 모습이 아닌가. 자전거 관련 정책을 세울 때 자전거의 시대적 의미를 새겨야 한다. 하드웨어적 인프라만으로는 실현할 수 없는 통합적 자전거 인프라를 만들어야 한다. 비싼 석유 값 때문에 자전거를 타는 사람이 늘어날 것을 예상해서 자전거도로를 설치하겠다는 정책이라면 낮은 차원의 대책일 뿐이다. 그런 고려에서 출발한 인프라는 운전자, 보행자와 갈등을 유발하고 곳곳에서 문제를 일으킬 것이다. 자전거 통합 인프라는 이제 자전거 타는 사람의 의견만 반영하는 차원이 아니라 모든 국민의 공통된 문제로 확대하여 구축할 필요가 있다. 몇 가지 기본이 되는 의식 인프라의 요소는 다음과 같다. 첫째, 자전거 문제를 진정으로 이해해야 한다. 자전거를 석유문명을 극복할 수 있는 지속가능한 해법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둘째, 자전거는 자동차와 정신적 물질적으로 문명의 충돌을 일으킨다는 점을 인식하고 이를 전제로 인프라를 구축해야 한다. 프랑스 파리의 자전거 무인 대여 프로그램인 ‘벨리브(velib)’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자동차가 거대한 공룡처럼 자리 잡은 한국의 대도시에서 자전거 인프라는 어떤 자리를 차지해야 하는지 가늠해 봐야 한다. 셋째, 자전거 인프라가 제대로 가동되려면 국민의 의지와 정치적 결단이 필요하다. 도로 공유, 안전 시스템, 미세먼지, 보험, 세제 인센티브, 자전거 디자인 등도 간과할 수 없는 부분이다. 경제-환경-사회운동 번져나가야 우리는 석유문명을 바탕으로 편리함을 얻었고, 또한 나약해졌다. 자전거 타기는 개인의 삶에서 실천할 수 있는 일이다. 자전거 인프라는 당장 자전거를 타는 사람을 위한 차원이 아닌 지속가능한 경제·환경·사회 운동이다. 모든 국민이 두 바퀴를 굴려 지금 바로 시작할 수 있는 정신적인 녹색 사업이다. 아름다운 우리 강산을 파헤치는 ‘힘의 사업’이 아닌, 창조주가 인간을 지은 목적을 자연스럽게 실천하는 경이로운 운동이다. 이제 자유로 돌아가자. 윤호섭 국민대 명예교수 원문보기 :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10&oid=020&aid=0001951986 |